마닐라 퀘존시티 중식당 오리엔탈 팰리스

필리핀에 두어 달만 있어 보면 알게 되는 게 있습니다. 한식은 비싸고, 현지식은 어느 순간 물립니다. 매일 실로그(silog)와 아도보를 먹을 수는 없고, 한식당은 한 끼에 두 배를 냅니다.
그 사이를 메우는 게 중식입니다. 그런데 필리핀 중식은 한국 중국집과 다릅니다. 짜장면도 짬뽕도 없습니다. 화교가 수백 년 뿌리내린 나라라 광둥(캔토니즈) 요리가 그대로 들어와 현지 음식이 됐습니다.
며칠 전 마닐라 퀘존시티의 오리엔탈 팰리스(華園酒家) 에 다녀왔습니다. 이 글의 사진은 전부 그때 직접 찍은 것이고, 먹은 순서대로 정리했습니다.

한국 중국집을 생각하고 가면 당황합니다
첫 번째 차이는 메뉴에 짜장면이 없다는 것입니다. 한국의 중국집은 화교가 들여온 산둥 요리가 한국식으로 변형된 것이고, 필리핀은 광둥·복건 계열이 들어왔습니다. 뿌리가 다릅니다.
두 번째 차이는 먹는 방식입니다. 1인분씩 시키는 게 아니라 여러 요리를 시켜 원형 테이블에서 나눠 먹습니다. 그래서 혼자 가면 선택지가 확 줄고, 4명 이상일 때 제 값을 합니다.
세 번째는 규모입니다. 이런 식당은 대개 연회장을 겸합니다. 돌잔치·결혼식·중국 설 행사가 여기서 열립니다.

수족관을 먼저 보게 됩니다
로비를 지나면 벽 한 면이 수족관입니다. 게·새우·생선이 살아 있습니다.

이게 광둥 요리의 특징입니다. 재료를 살아 있는 상태로 보여주고 주문받아 바로 조리합니다. 한국의 횟집과 비슷한 방식인데, 여기서는 찌거나 볶아 나옵니다.
활어를 고르면 무게로 계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문 전에 kg당 가격과 대략의 무게를 물어보시는 편이 안전합니다. 다 먹고 나서 금액에 놀라는 일이 흔합니다.
먹은 것들
랍스터 국수
가장 인상 깊었던 요리입니다. 랍스터를 반으로 갈라 파·생강과 볶은 뒤 국수 위에 얹어 냅니다.

핵심은 랍스터가 아니라 아래 깔린 국수입니다. 껍질에서 나온 국물이 면에 배어드는데, 랍스터 살보다 이쪽이 더 맛있다고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광둥식 잔치 요리의 전형입니다.
생선살 볶음
흰살생선을 저며 그린빈과 함께 볶고 간장 베이스 소스를 두른 요리입니다.

간이 세지 않습니다. 이게 광둥 요리의 성격인데, 재료 맛을 죽이지 않는 선에서 멈춥니다. 한국식 중화요리의 강한 불맛과 단짠을 기대하면 심심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클레이팟
뚝배기에 고기와 감자를 넣고 조린 요리입니다. 한국의 갈비찜과 감자탕 중간쯤 되는 맛입니다.

한국 사람 입에 가장 잘 맞는 요리였습니다. 처음 가시는 분께 하나 고르라면 이걸 권합니다.
만터우
찐 것과 튀긴 것이 함께 나옵니다.

속이 없는 빵입니다. 소스에 찍어 먹는 용도입니다. 튀긴 쪽이 겉이 바삭해서 국물이 있는 요리와 잘 맞습니다. 한국에서는 꽃빵으로 부르는 것과 같은 계열입니다.
디저트
검은 젤리 디저트로 마무리했습니다.

쌉싸름하면서 시원합니다. 호불호가 갈리는데, 기름진 요리를 먹은 뒤에는 이게 맞습니다.
이 집은 부치(buchi) 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참깨를 묻혀 튀긴 찹쌀 경단인데, 저는 이번에 못 먹어서 다음 기회로 미뤘습니다.
가기 전에 알아둘 것
위치 — 퀘존시티 토마스 모라토(Tomas Morato) 일대입니다. 마닐라 시내에서 그랩으로 이동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입구가 여러 개라 기사에게 정확한 도로명을 말해두는 편이 좋습니다.
인원 — 4명 이상이 좋습니다. 요리가 접시 단위로 나와서 둘이 가면 두세 가지밖에 못 먹습니다.
예약 — 주말이나 행사 시즌에는 연회 예약으로 홀이 통째로 차는 날이 있습니다. 가기 전에 확인하시는 편이 안전합니다.
결제 — 카드가 되는 곳이 많지만 현금도 챙겨 가십시오. 필리핀은 단말기가 안 되는 날이 종종 있습니다.
금액 — 이 글에 가격을 적지 않은 이유가 있습니다. 활어는 무게로 계산되고 메뉴 가격은 자주 바뀝니다. 주문 전에 물어보는 것이 유일하게 확실한 방법입니다.
필리핀 화교 중식이 왜 다른가
마지막으로 배경을 조금 적어둡니다. 필리핀의 중국계 이민은 스페인 식민지 이전부터 있었습니다. 그래서 중식이 외국 음식이 아니라 현지 음식의 일부입니다.
- 판싯(pancit) — 필리핀 국수 요리의 총칭인데 어원이 복건어입니다
- 시오마이·시오팍 — 딤섬의 소마이(燒賣)·차슈파오(叉燒包)가 현지화된 것입니다
- 루미피아(lumpia) — 춘권입니다
즉 필리핀 사람들이 매일 먹는 음식 상당수가 이미 중식 계열입니다. 그래서 이런 식당에 가면 「외국 음식점」이 아니라 「격식 차린 자리에 가는 집」의 분위기가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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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수든 여행이든 한 달을 넘기면 입맛이 지치는 시기가 옵니다. 그때 한식당으로 직행하는 대신 이런 곳을 한 번 넣어보시면, 같은 예산으로 훨씬 넓은 폭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여럿이 둘러앉아 나눠 먹는 자리 자체가, 혼자 지내는 기간에는 꽤 큰 것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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